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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렘 입숨의 책 - 구병모 미니픽션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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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렘 입숨의 책 - 구병모 미니픽션

안온북스

구병모 지음

2023-01-30

대출가능 (보유:1, 대출:0)

책소개
저자소개
목차
<b>거대한 스케일, 세밀한 스케치
오직 구병모만이 구현 가능한
소설의 지상화地上畵

구병모 미니픽션 《로렘 입숨의 책》이 안온북스에서 출간되었다. 200자 원고지 50장 내외의 작품 열세 편을 모은 이번 책에서 작가는 그간 보여준 심미적인 색채를 더욱 강렬하게 내뱉는 동시에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과 의식을 소설화해내는 능력을 여지없이 펼쳐 보인다. 모두 달라 보이는 열세 가지 색감은 소설을 다 읽고서야 도달하게 될 높은 고도에서 내려다보아야만 비로소 그 진면모를 알 수 있다. 마치 나스카의 지상화를 마주한 순간처럼 놀랄 수밖에 없는 작품들은 살필수록 짧은 분량 안에 꼼꼼히 덧칠해 새겨 넣은 메시지(또는 메시지 없음)에 숨죽이게 한다. ‘로렘 입숨’은 뜻 없이 셰이프를 잡기 위해 흘려놓은 무작위 더미 텍스트를 가리키나, 그 뜻 없는 낯섦이 우리를 완벽하고 세련된 작품의 세계로 이끈다. 선악에 대한 관념이든, 언어나 예술에 대한 태도이든, 세대나 시대의 위기 감각이든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쉬이 발설하지 않고 소설화하여 그 구조로서 드러나게 한다. 이런 거대한 사고를 세밀하게 소설화하는 능력의 탁월함은 《로렘 입숨의 책》에 실린 다양한 작품으로 그 빛을 발한다. 이것은 소설과 세계에 대한 작가만의 면밀한 대응이며, 비장한 다짐으로 읽힌다. 애써 소설의 존재 의무를 따져 묻는 일이 소설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모두에게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여기에 모인 소설들과 함께 그 먼 고도에 가닿기를 기대한다.

<b>구병모 소설의 너른 지평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다

재밌게 읽고 나서야 그 소설의 규모와 숨겨진 의도를 알고 감탄하게 하는 것은 여느 소설가들도 탐내는 구병모 작가의 장기일 것이다.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은 주제들은 언제나 작가의 몸을 통과해 이야기와 인물을 입고 그 윤곽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로렘 입숨의 책》에 실린 첫 작품 〈화장花粧의 도시〉는 태어나자마자 몸에 심겨진 ‘나노 시드’가 그 사람이 죽은 이후 꽃으로 피어나면서 그 삶을 증명한다는 어느 도시의 장례 정책을 통해 인간이 가진 선과 악의 양면을 드러내는 듯하지만, 반드시 착하기만 하거나 악하기만 한 사람이 없듯이 선악을 가르는 일에는 또 다른 사회적 모순이 숨겨져 있음을 보여주는 레토릭을 구현한다. 〈신인神人의 유배〉는 나스카 지상화의 탄생에 대한 거대한 상상이다. 신비한 자연 현상에 숨겨진 절대자와 신인의 대척 국면이 한 편의 이야기를 쌓는다. 〈영 원의 꿈〉의 ‘나’는 도서관에서 뜻밖에 매몽買夢을 청하는 이를 만나 별다른 의미가 없는 꿈을 팔게 된다. 생활비로도 쓰고 집세로도 쓰면서 안락을 누릴 즈음 더는 간밤에 꾼 꿈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허탕을 반복하던 중 또 다른 꿈, 자신이 꿈꾸었으나 펼치지 못한 꿈을 말하게 되고, 그 잃어버린 꿈에도 값을 매기는 이야기가 꿈처럼 펼쳐진다. 〈동사를 가질 권리〉는 이 책의 제목 ‘입숨 로렘의 책’의 힌트를 주는 작품이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말이 되지 않는 소설을 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는 작가의 말에서 작가의 소설에 대한 도전, 정형화되지 않고 잡히지 않는 소설을 좇는 의지가 엿보인다.

〈날아라, 오딘〉의 ‘나’는 전쟁에 동원될 개를 훈련하며 그들에게 어떤 감정도 갖지 않으려 노력한다. 잔인한 생체 실험용으로 쓰이거나 대전차 폭탄으로 쓰일 녀석들을 굳이 사랑할 필요는 없다는 다짐은 ‘오딘’의 출전을 앞두고 위기를 맞는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 중인 전쟁의 참화를 그대로 이입하게 하는 생생한 소설적 전치술이 숨겨져 있다. 〈예술은 닫힌 문〉은 오늘날 미디어를 휩쓴 각종 오디션 예능의 비정함을 극대화시킨 소설이다. 현실의 오디션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의 오디션은 생과 사를 다투는 전장이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90초. 게다가 예술적 성취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 심사위원들과의 소설적 대치가 인상적이다. 〈입회인〉은 중세 시대의 결투 제도가 부활한 미래를 그린다. 절차가 복잡하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법 집행이 아닌 사적인 처벌을 원하고 행하는 사람들. ‘나’는 그러한 결투의 당사자만큼 중요한 역할을 행하는 ‘입회인’으로 딸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긴다. 〈궁서와 하멜른의 남자〉는 오랫동안 수리하지 않은 24평짜리 구축 아파트를 밀착 묘사한다. 세입자인 ‘나’는 아이가 태어나 육아와 집안일을 온전히 맡게 되었고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을 내놓은 지 한참 되었지만 계약은 성사되지 않고 한겨울을 맞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남자가 집에 찾아와 집에 쥐가 득시글하다고 주장한다. 실재하는 것과 그것을 숨기려 하는 관리는 여느 행정력 이면의 폭력성을 눈앞에 그려낸다.

〈롱슬리브〉는 남들보다 눈에 띄게 팔이 길어 놀림감이 되거나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특성을 가진 친구가 ‘나’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이야기다. 잠시잠깐 신의 실수로 태어나게 된 것 같지만 그것은 두 팔로 큰 그늘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의 현현인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말들〉의 주인공 ‘원’은 “신의 사전을 훔쳐서 나온 천사”다. 원은 거대한 사전에서 어떤 단어를 지워버려 더 나은 세상을 인간에게 주고자 한다. 공격, 고독, 오염과 같은 단어를 신의 사전에서 지워내 그 단어가 없어진다면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더 좋은 공동체가 될까를 생각하게 한다. 〈누더기 얼굴〉은 투명인간이다. 은유로서의 투명이 아닌 물리적 투명인간인 ‘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려 하지만 쉽지 않다. 자신의 특성을 활용해 정의와 공익에 보탬이 되려고도 하지만 돌아오는 건 냉대뿐이다. 나는 이제 남들과 같은 얼굴을 갖고 싶다. 하지만 본래 나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세상에 없으므로 가능하지 않다. 〈지당하고도 그럴듯한〉의 ‘나’는 소설가다. 출간 작업을 하며 소설을 고쳐나가는, 픽션이 분명한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작가 구병모가 소설을 대하는 태도와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지당하고 그럴듯하다고 믿는 모든 것에 대한 역설이기도 하다. 〈시간의 벽감壁龕〉은 시간을 통과하여 공간처럼 이동할 수 있는 펜던트가 개발되었고 100년 뒤의 참담을 목격하였지만, 인간은 미래의 절망을 엿보았다고 해서 자신의 현재를 반성하거나 조율하는 존재가 아님을 목도하게 한다.

이렇게 구병모 작가는 미니픽션이라는 한계가 분명해 보이는 규격에도 불구하고 영토와 시간, 인간과 신의 경계를 무참히 가로지르고 단숨에 제압해 소설 한 편의 완성도와 가능성은 규모로 결정할 수 없음을 증명해낸다. 그렇기에 짧은 소설이라고 해서 그 품이 덜 드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거대하고도 세밀한 이야기들과 더불어 이 책에는 작품의 시작점과 쓰고 난 후의 소회 등을 담은 작가 노트가 작품마다 더해져 읽는 묘미를 더한다. 우리는 구병모 작가가 가진 소설적 역량을 이해하면서도 때론 오해했고 지당하고도 그럴듯하다고 믿는 근거로 부당한 요구를 더하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작가 구병모의 너른 지평과 진수를 한 권에 담아낸 《로렘 입숨의 책》과 함께 짧음 위로 켜켜이 더해진 구병모만 깊이를 한껏 누려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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