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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자격 - 게으르고 불안정하며 늙고 의지 없는… ‘나쁜 노동자’들이 말하는 노동의 자격 (커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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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자격 - 게으르고 불안정하며 늙고 의지 없는… ‘나쁜 노동자’들이 말하는 노동의 자격

갈라파고스

희정 지음

20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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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소개
목차
<b>모두 일해야 한다지만 아무나 일할 수 없는 사회,
다가설 수 없는 ‘노동의 자격’에 대하여
“그러게 좀 열심히 살지…” 산업재해나 과로사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 달린 댓글을 심심치 않게 본다. 너무 열심히 일하다 다치고 사망한 이들에게 ‘열심’이란 잣대를 들이댄다. 다치고 죽은 이들이 행한 ‘열심’과 세간의 ‘열심’은 다르다. (사람들은 ‘열심히’ 살았다면 지방의 작은 대학을 졸업할 리 없다고 생각하고, 졸업 후 변변한 곳에 ‘정식’ 취업을 하지 못할 리 없다고 여긴다.) 이렇듯 누군가의 ‘열심’은 ‘진정한 열심’이 아니다. 그리고 ‘진정한 열심’을 행한 것이 아니라면, 그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는 모두 개인의 탓이 된다.
이 책은 누구나 제 밥벌이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세상, 일하지 않은 자는 먹지도 말라는 세상, 즉 ‘노동자’가 ‘사람’의 자격이 된 세상,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노동시장에서 소외될 수 없다고 믿는 세상에서 ‘일할 자격’이 진정 모두에게 보편타당한 것인지를 묻는다.
“당신은 젊은가? 몸이 건강한가? 외모가 준수한가? 신체에 손상이 없는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질환이 없는가? 의지는 강한가? 생활 패턴이 안정적인가? 교우 관계가 원만한가? 최종 학력이 평균 이상인가? 전문적인 기술이나 지식이 있는가?”
당신은 이 질문들로부터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가? 지금의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더라도, ‘(정상) 노동자’로 살아가는 시간은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노동의 시간 전체에서 아주 잠깐일지도 모른다.

<b>일할 자격이 없어 말할 자격도 없던
낙인찍힌 노동자들이 바라보는 일의 세계
‘사람’이라면 ‘노동자’여야 한다는 조건은 너무도 강력해서, 우리는 노동자가 되는 데도 자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그리하여 이 자격에서 박탈된 이들의 문제는 ‘노동’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 책은 ‘성실하지 못한’, ‘생산성 없는’, ‘나태한’, ‘난잡한’, ‘늙은’, ‘불안정한’, ‘골골대는’… 일터에 들어올 자격을 박탈한 ‘낙인찍힌’ 이들의 시선으로 일의 세계를 바라본다. 노동자의 자격을 지배하는 정상 권력의 시선에서는 이러한 낙인이 정상성의 반대항이었다면, 가치의 위계를 뒤집어보는 시선에서 낙인은 정상성의 거울상이다. ‘열정적임’이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하는 ‘(정상) 노동자’의 자격이 될수록, ‘의지박약하다’는 낙인은 꼭 그만큼 누군가에게서 일할 자격을 박탈한다. 이 책은 “낙인의 기능은 비정상을 추려내는 데에만 있지 않다”는 것, “규율과 통제를 수락하고, 이윤의 획득을 긍정적 가치로 이해하고, 자신의 몸이 그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사용됨을 적극적으로 수락하는” 노력을 잠시라도 게을리하는 모든 이들을 채찍질한다는 것, 그리하여 ‘(정상) 노동자’들조차도 사실상 일터의 낙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새롭게 비춘다.
이 책을 쓰며 “나와 연결된” 일터의 낙인들을 우선하여 떠올려보았다는 저자는 ‘성실하지 않은 청년들’(나태한, 의지박약한), ‘혼자 양육하는 비혼모들’(얕보이는, 난잡한), ‘정신질환을 겪는 여성들’(나약한, 불안정한), ‘노년 돌봄노동자들’(골골대는, 짐스러운), ‘과체중인 사람들’(둔한, 무절제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이들’(남자답지 못한, 결격사유가 있는)의 이야기를 듣고 풀어낸다.
1장 ‘생산적으로 살아라?’는 성실하지 않은 청년들의 분투기를 다룬다. ‘자기관리’를 넘어 스스로를 기업처럼 운용하는 ‘자기 경영적 주체’로 살아가기를 요청받는 시기에 “차곡차곡 스펙을 쌓지 않고, 취업 준비를 유예하고, 취업해도 자꾸 퇴사하고, 사람들이 정식 일자리로 보지 않는 곳에서만 일을 구하는” 청년들이 어떻게 ‘일할 자격’과 ‘스스로를 설명할 자격’을 잃게 되는지(이들에게 사회는 ‘게으름뱅이’, ‘낙오자’ 외 다른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를 살핀다. 동시에 시장의 원리를 내면화한 ‘좋은 일자리’의 조건과 이 질서 안에서만 의미를 획득하는 ‘성실’이라는 가치, ‘성실’과 한 몸이 된 ‘불안’이라는 감정이 일의 세계를 어떻게 작동시키는지 살펴본다.
2장 ‘덮어놓고 낳든, 낳지 않든’에서는 한부모 가정의 가장이자 노동자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절박하기에’ 직장을 쉽게 그만둘 수 없는 처지라고 여겨지는 이들은 불안정하고 고된 일자리에 쉽게 고용되고, 그로 인해 일터에서 쉽게 소진되고 쉽게 내쳐진다. 어떤 결정을 하든 ‘그러게 누가 낳으랬냐’라는 타박의 시선과 ‘모자란 어머니’라는 자책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지기 어려운 이들은 비혼을 말하는 여성들조차 비혼모의 삶의 종착지는 결혼이라고 여기는 사회에서 ‘미완성’, ‘난잡함’ 등의 낙인을 쓰고 노동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진정한) 어머니’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정상) 노동자’로 살아갈 수 없는 것과 어떻게 포개어지는지를 보게 한다.
3장 ‘약봉지를 흔들며 걸어간 곳, 직장’에서는 정신질환 증상을 겪으면서도 “매일 같은 곳으로 출근하고, 인사권을 지닌 존재와 한 공간에서 일하며, 평판을 공유하는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는” 직장인에 주목한다. “버티면 베테랑이 된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아무 저항을 받지 않는 “진공 상태”에 머물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은 남몰래 ‘광인’이 된다. 일터에서 “인정받지 못할까” 불안해하고,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약을 먹는다. 그러면서도 질환이 일의 효율을 방해할까 전전긍긍한다. “언제까지 약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들의 막막한 의문을 저자는 “‘일터에 나가기 위해’ 약을 먹는 일을 우리는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묻는다.
4장 ‘늙은 사람을 돌보는 늙은 사람의 노동’에는 80대 노인을 돌보는 60대 재가요양보호사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어르신’을 “애”라고 칭하며 정해진 방문일이 아닌 날에도 돌봄을 자청하는 이들이 왜 자신의 노동을 ‘일’이 아닌 ‘봉사’로 여기는지, 노인에게 가장 많이 마음을 내어주면서도 ‘늙음’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지를 살펴본다. “만 60세 정년을 정해둔 세상에서 만 61세의 노인이 일하지 않고는 살아갈 방법이 없”는 사회에서 ‘늙는다는 것’에 대한 이 사회의 못 미더움과 배제가 돌보는 사람과 의존하는 대상으로, 서비스 제공자와 서비스 소비자로 노인과 노인이 만나는 공간에서 관계와 노동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들여다본다.
5장 ‘뚱뚱해서 게으르다고 여길까 봐’에서는 과체중인 이들의 공적 활동을 이야기한다. ‘뚱뚱한’ 몸이 ‘자기관리’의 실패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날씬함은 그 자체로 능력이 된다. 이 장에서는 ‘체중’이 ‘일할 자격’을 어떻게 가르는지, 일터 내의 입지와 이미지를 어떻게 좌우하며 일하는 이의 능력과 평판에 개입하는지를 알아본다. 동시에 “지금의 몸은 나의 몸이 아니”라고 여기기에 체중을 둘러싼 낙인은 당사자에게도 진지한 문제로 인식되기 어렵다는 점을 함께 짚으며 ‘살아 숨 쉬는 몸’을 바라보는 일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6장 ‘군대보다 편하니까’에서는 “‘군필’이라고 말하는 것은 금기시되고 ‘군대’라는 단어도 통용되지 않지만 병역의 의무가 수행되는 곳”에서 첫 직장(발령받은 근무지)을 갖게 되는 ‘사회복무요원’들의 노동에 다가간다. 어딘가 아프고 손상되었다는 이유로 4급 판정을 받지만, “건강하지 않은 청년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이들은 “꾀병”을 부리며 “꿀이나 빠는” “나약한” 남성이 된다. ‘취약한’ 이들이 소환되는 ‘더 취약한’ 일터의 현실 또한 함께 짚으며 거대한 노동시장의 하부를 떠받치는 무상노동과 강제노동의 세계를 살펴본다.

<b>자격이 아닌 삶으로서 일터에 서기
일터에서 부당함을 겪은 사람들을 긴 시간 취재해온 저자는 그간 “직장 문턱”을 넘을 수 있는 사람들만을 만나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직장 문턱”을 넘을 수 없거나 그 경계에 서 있는 이들의 노동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다른 노동”의 가능성을 믿으면서도 “성실과 효율”이라는 이 사회의 노동 문법을 놓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는 저자 희정의 솔직하고 섬세한 탐구로 쓰였다. 또한, 자신을 ‘(정상) 노동자’로 호명하지 않는 사회에서 스스로를 설명하며 일하려는 인터뷰이들의 치열한 고민과 용기로 쓰였다.
누구나 노동자가 될 수 있고, 되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일할 자격’은 사실 ‘일할 능력’으로 바꾸어 불러야 적절할 만큼 끝없는 노력을 요한다. 이를 짚으며 이 책은 자격이 박탈된 ‘비정상’이기에 누군가가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문법에 소외가 필요하기에 누군가가 ‘비정상’이 된다는 것을 밝힌다. 이 책이 보여주듯 “일의 세계가 차별을 통하지 않고는 굴러가지 못하”는 세계라면, ‘일할 자격’을 박탈한 이들은 일의 세계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일의 세계를 굴리는 문법을 “가장 먼저 겪는” 이들이자, 우리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보이지 않는 ‘노동의 문법’을 떼어내 보이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일터의 낙인을 탐구하는 과정은 사회가 각각 ‘청년’의, ‘어머니’의, ‘노인’의, ‘남성’의, ‘신체와 정신’의 정상성을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과정과 포개어진다. 이렇듯 낙인과 정상성이 만들어지고 구성되는 것이라면 그러한 낙인과 정상성으로 굴러가는 노동의 세계 역시 만들어지고 구성되는 세계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나는 좋은 노동자일까?’라고 스스로의 일할 자격을 검열하던 것에서 벗어나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볼 수 있을 것이다. 일터의 정상성은 무엇을 향해 있을까? 우리는 언젠가 자격을 말하지 않고 일터에 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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